1990년대 초중반의 토리노: 몰락의 시작점과 그 원인 토리노 FC

대체 90년대 중반부터 토리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지금도 이탈리아 내 트로피(스쿠데토+코파이탈리아) 개수로는 로마랑 동률(12개, 토리노:스쿠데토7+코파5, 로마:스쿠데토3+코파9)긴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토리노는 리그 전체 성적 따져도 4위하고 그러던 팀이었습니다. 

비오는 날 비행기가 수페르가 언덕에 부딪친 그 순간부터, 토리노가 그 이전까지 해오던 것처럼 리그 최상위 3팀과 꾸준히 경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 이후로도 성적이 아주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단 말이지요. 수페르가 이후에 비록 스쿠데토는 1번밖에 하지 못했지만 리그 2위도 4번 하고 중상위권 이상으로도 계속 꾸준하게 성적을 내주던 팀이었어요. 1960-61, 1989-90시즌의 세리에B 역사가 있긴 하지만.



근데 90년대 중반부터 팀이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순위를 살펴보면, 1990-91 승격시즌부터 순위를 따지면 5-3-9-8-11-16 이렇게, 1991-92시즌에 리그3위&UEFA컵 결승진출, 1992-93시즌 코파이탈리아 우승이라는 피크를 찍고 난 뒤에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어요. 아주아주 급격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때 - 1995-96시즌 16위 - 강등된 뒤에 내리 3시즌을 세리에B에서만 보내지요. 뭐 강등이야 한 시즌 좀 심하게 못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내리 3시즌 동안 B에 있으면서 팀이 완전히 망가진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93-94시즌까지만 해도 리그 통산 4위였던 팀이 다른 팀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지요. 로마, 피오렌티나, 라치오한테도. 지금은 라치오는 다시 추월하면서 리그 통산 6위까지 올라갔더군요.


그러면 왜 몰락이 시작되었는가.

1989 년, 지안 마우로 보르사노(Gian Mauro Borsano)가 토리노를 인수합니다. 바로 그 해에 팀이 세리에B로 강등되는데, 보르사노는 에밀리아노 몬도니코(Emiliano Mondonico) 감독을 선임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1989-90시즌 세리에B 1위를 차지하면서 토리노를 세리에 A로 승격시켰습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한 인기를 가지고 정계에도 진출하는 등, 마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도 비슷한 행보를 취했습니다. 이후 몇 시즌간 토리노는 리그순위도 높게 가져가면서 예전의 명성을 찾는 듯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단에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왔습다. 바로 구단주인 마우로 보르사노가 파산에 직면한 겁니다.

1992년에 경제적인 문제가 시작되면서 그는 급히 대출금을 받으면서 만회를 해보려 하지만 소용없었고, 1992년 여름이적시장에서 토리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고의 플레이어 지안루이지 렌티니(Gianluigi Lentini)를 팔아치웠습니다. 이는 팬들을 격분시켰고, 그뿐만 아니라 폴리카노(Roberto Policano), 베네데티(Silvano Benedetti), 크라베로(Roberto Cravero), 브레시아니(Giorgio Bresciani) 등의 주요 선수들도 모조리 팔아 버렸습니다.

1993년 초, 보르사노는 토리노 구단을 로베르토 고베아니(Roberto Goveani)에게 넘겼습니다. 참고로 고베아니는 역대 토리노 회장 중 가장 젊은(당시 35세) 자였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사실상 보르사노가 구단주 사임 이후에도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었고, 보르사노는 TORINO L' Ipifim이란 곳의 파산과 관련하여 사기, 횡령, 분식회계 지시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사법부의 조사 결과, 보르사노와 그의 회사 GIMA는 120억 리라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고, 결국 1998년 GIMA는 부도가 나고 보르사노는 세금 은닉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됩니다. 1992년에 렌티니를 판매한 이적료 역시도 상당한 액수를 이면 계약에 의해 보르사노가 챙긴 걸로 드러났습니다.
여담으로, 보르사노라는 자는 2009년에 다시 Emmelunga라는 가구 체인 매장을 인수하려고 하면서 다시 뉴스에 이름을 올렸고 또다른 가구 체인점 Aiazzone와 통합을 시도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보르사노와 그의 동료들은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그들의 사업 역시 도산하게 되었습니다.

여하튼, 토리노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때에 주축이던 렌티니를 비롯해 폴리카노, 베네데티 같은 주축 선수들이 모두 팔려나갔고, 지금까지도 팀의 마지막 트로피로 남아 있는 1992/93시즌 코파이탈리아 우승을 끝으로 토리노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 뒤로 8위-11위-16위로 계속 성적이 떨어지면서 결국 1995-96시즌에 강등을 당하게 되고, 구단 창립 최초로 세리에B에서만 3시즌을 있게 되면서 토리노는 완전히 바닥 끝까지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토리노 뉴스사이트나 팬페이지에서도 이 시대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차라리 정말 바닥에 있던 때(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이야기를 하면 했지 이 때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참고자료: 토리노 공식홈페이지 역사 소개란 - http://www.torinofc.it/storia , 1992 - 2005: gli anni duri 편

여하튼,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 기나긴 암흑기가 팀을 완전히 망가트려 놨다고 봐도 되겠지요. 마침 그게 축구의 세계화가 시작된 때와 맞물리면서 더더욱. (이전에도 나쁘진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완연한 강팀이 된 로마와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90년대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토리노의 그전 성적까지도 종종 싸잡아서 폄하되는 경향도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저 20년간 지속된 암흑기의 거의 중간 지점부터 토리노 팬질을 시작한 이상 팀이 강한 장면보다는 팀이 약해서 비실거리고,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익숙한 게 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졌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인젠 13-14시즌, 14-15시즌 연속으로 꽤 높은 순위를 거두면서 팀이 암흑기에서 벗어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면서 그 동안의 기간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시즌에도 좋은 순위를 이어 간다면 토리노의 암흑기가 끝났다고 보아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래 놓고서 또 갑자기 성적 안 좋아져서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아직까지도 저한테 '강등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있습니다. 08-09 때의 그 기억은 상상도 하기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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